5 년 전쯤으로 기억한다. 한마디로 연대는 확실히 알 수 없으나 서해안 고속도로가 개통되기 직전이라고 기억되는 어느 해 추석.
아침에 출발해 목포에 있는 부모님 산소에 성묘를 하고 군산으로 오는 길.
십여년 넘게 해마다 한 두번씩 다니는 코스는 변함없이,목포에서 국도 1 호선을 타고 가다가 함평에서 국도 39 호선으로갈아 타서,영광- 고창- 부안- 김제- 만경- 대야- 군산으로 오는 길.
광주까지 가서 호남 고속도로를 타느니 국도로 가는 게 구경도 많이하고 구불구불 재미도 있지만,결정적인 이유는 걸리는 시간은 거의 같은데 국도는 통행료를 내지 않아도 된다는 매력이 있었다.
그날도 부안 입구까지는 룰루 랄라 잘 왔다.해마다 거기서부터가 문제였는데,역시나 마찬가지. 터미널쪽 큰 길로 가면 더 막힌다는 걸 수년에 걸친 경험으로 익히 아는 나는 골목길로 접어들어 군청 앞으로 지나가는 샛길로 잘도 빠져 나왔다.
잘못 걸리면 부안 읍내를 빠져 나오는 데만 두 시간이 넘게 걸린 적이 한두번이 아니었다.
동진강 휴게소에서 잠깐 쉬면서 아이들 아이스크림에 호도과자에 쉬~까지해결을 하고, 출발을 하면서 생각하니 만경부터 대야까지 항상 막혀서 두어시간을 허비했던 생각이 번뜩 났다.
'빨리 집에 가야 되는데'. 산소가 가까운 곳에 있는 손윗 동서가 기다리고 있을 텐데,길에서 막혀있는 두어 시간이면 보배20 두 병은 마실 수 있는데......
이럴게 아니다 하는 생각에 김제- 익산간 도로로 가서 전군 도로로 빠지면 빠를 것같아 그쪽으로 갔다.
김제 시내 입구까지는 잘갔다.그런데 세 방향에서 차들이 합류하더니 무슨 농공 단진가 하는 데서부터 차들이 꼼짝도 하질 않는 거였다.
10 미터 가는 데 족히 30분은 걸린 것 같았다.
앞 뒤 차에서 사람들이 내리더니 아이들 오줌도 뉘고, 기지개도 켜고,차랑 사람이 같이 걸어가는데 사람들의 걸음이 더 빨랐다.
그렇게 두 시간 정도 갔을까, 넉넉잡고 다섯 시까지 도착할려고 점심도 안먹고 출발 했는데,평소에는 세 시간이면 충분한 거리지만 명절때라 넉넉하게 여섯 시간을 잡았는데 해가 지고 있었다.
그때, 저 앞에 가던 차 한 대가 우측으로 난 샛길로 들어가는게 보였다.' 저 차는 목적지에 다 와서 좋겠다' 싶었는데, 그 뒷차, 또 그 뒤......,번호판을 봤더니 '전북 31 너 0000',순간'아! 군산 찬데......'
더이상 무슨 생각이 더 필요하랴, 저게 바로 샛길이구나.
생각하고 자시고 할 사이도없이 핸들이 저절로 그 족으로 꺾였다.
딱 차 한 대 넓이에 맞춰서 시멘트로 포장된 '새마을 도로'를 "새벽종이 울렸네, 새아침이 밝았네"를 흥얼거리며 달렸다.
후사경으로 뒷쪽을 보니 나같은 생각을 했는지 아니면 나랑 행선지가 같은지 줄줄이 차들이 따라오고 있었다.
'너희들 다 내 덕분인 줄 알아라' 속으로 쾌재를 부르며 어깨까지 으쓱해졌다.
식구들에게 의미 심장한 미소를 지어보이고는 휘파람을 불려는 순간,맨 앞에 가던 차가 어떤 집으로 들어가고,또 조금 가다 '회관'같은 건물 앞에 또 한 대가 정차를 하더니 엔진 정지.
'뭐야, 나는 어디로 가라고!' 앞에 길을 보니 마을 안으로 들어 가면서 점점 좁아지고 있었다.
그자리에 섰다. 내 뒷차도 섰다.그 뒷차도, 그 뒤......
무슨 C F에서 조형기가 쫄병들을 데리고, "나를 따르라 !" 고지를 점령 했다가, "여그가 아닌게벼?" 쫄병들 "으악!" 다시 다른 고지를 점령해놓고선, "아까 거그가 맞는게벼 ? " 쫄병들 다시 "으악!!"
딱 그지경이었다.
그런다고 나도 뒷차들한테, "아그들아 여그가 아닌게벼!" 했다간 100대도 넘게 꼬리에 꼬리를 물고있는 저 차들한테......
뒤에서 사람들이 이상한 낌새를 알아챘는지 하나 둘 차에서 내리더니 앞으로 왔다.
하는 수 없이 자초지종을 얘기했더니 자기들도 나랑 같은 생각이어서였던지,별 시비없이 앞으로의 타계책을 의논하기로 했다.
결국 뒷차에게 릴레이로 전달을 해서 돌아가기로 했다.
그런데 그 '새마을 도로'가 돌아갈 차선이 없다. 그런다고 차가 180도 몸을 홱 돌려서 갈 수도 없고......진퇴양난,사면초가......
마을 사람 몇이 나와서 구경을 했다. 아마 이 마을 생기고 이렇게 많은 차들이 마을을 방문한게 처음이라 신기하다는 듯.
조금 젊은 사람을 붙잡고 큰 도로로 나가는 길을 물었더니,"있기는 있는데......"라며 말 긑을 흐렸다. 알려달라고 사정을 했더니,"요~기로 조금 더가면 죠~기 언덕을 넘어가는 길이 있는데 비포장이라서요......"
'감사,땡큐,쎄쎄,아리가또......'
"한 번 가~봅시다"(나~~를 따르라~!)
내가 출발을하자 뒷차가 또 따라왔다.(충성스런 쫄병놈, 너는 내가 책임 진다.그려,나를 따르라!) 속으로 책임감까지 생겼다.
동네 사람이 알려준대로, 요~기로 가서,조~기 언덕을 보니 앵?, 이게 무슨 길이야.길 맞아?
그냥 언덕위 소나무 사이로 딸딸이(경운기)가 몇 번 지나간 자국이었다.
하지만 어떻게 저 뒷차들에게,"아까 거그가 맞는게벼!" 할 수는 없고.
그래, 가자, 미지의 세계로......
우리 차는 구형 승합이라 차 바닥이 조금 높은 편이니까 어지간하면 갈 수 있을 것같았다.
저 뒤에 충성심으로 따라오는 고급 승용차들이야 차 바닥이 언덕에 걸려서 바둥대든 말든......
아이들한테 "야!,아무데나 꽉 붙잡어!" 소나무 사이를 요리조리 경운기 바퀴자국을 생명줄 삼아 달렸다.
운전 좀 한다는 사람들은 알 것이다, 오르막 흙길에서 한번 멈췄다 출발할려면 어떻게 되는 지......
어찌어찌해서 언덕을 넘어 내려오는데 진짜로 앞에 도로가 보였다.
이미 밤은 깊어졌는데 헤드라이트 불빛에 새까맣게 빛나는 아스팔트 !
뒤를 보니 나를 따르는 쫄병들이 트럭 두 대밖에 없었다.(나는 책임 없어, 진짜로 나는 책임 없당게......)
큰 도로로 나와보니 차들이 어쩌다 한 두대 지나가는데,자세히 보니 분명 '김제- 익산간'도로가 맞는데......세상에,내가 그 난리를 치는 동안 막혔던 도로가 말끔히 뚤렸던 것이다.
집에 도착하니 11시 30분,꼬박 열두시간이 걸린 것이다.
그날의 열두시간에 걸친 치열한 전투에서, 대장을 잘못만나 장렬하게 전사했거나,적(가족)에게 잡혀(끌려)가서 모진 고문에 시달렸을, 나를 충실히 따르던 쫄병들의 명복(행복)을 빌며, 그들의 뒤통수에 삼가 이 글을 바친다.
끝까지 읽어주신 님께 감사드리며,
끝으로 진짜 한마디,
모르는 길은 가지 말자.
아무리 막혀도 때가 되면 뚫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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