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집에서 시를 읽다
(2006.11.23)
오후 여섯시 근무가 끝나고 친구 내외와 저녁을 먹으면서 복분자에 담근 술, 정확하게 말하면 소주에다 복분자 열매를 넣어서 우려놓은 술을 두어 잔 마시고 숙소에 들어가는 중인데, 도중에 그냥은 지나치기 어려운 ‘참새 방앗간’, 맥주를 한 병 시켰더니 기본이라며 세 병을 내온다.
쥔 아짐이 자기도 한 잔 따라달라더니 홀짝 하고서는 저쪽 손님한테 술만 가져다주고 오겠다는, 묻지도 않은 말을 하고 가더니 감감 무소식.
혼자서 술을 마시며 심심해서 가방에 있던 시집을 꺼냈다.
‘다시 길눈 뜨다’ -김 영-.
나도 참 생뚱맞다. 술집에 앉아서 웬 시집?
‘황금빛 달관’이란 시편이 생각나서 다시 읽어 본다.
황금빛 달관
-김 영-
건강보험 민원실에서 하루를 보내는 그는 거드름을 피우는 사람에게도 친절해야 하고 딱한 사람에게도 따뜻한 마음을 선뜻 건넬 수 없다 보험료가 또 올랐다고 악을 써대는 민원인의 성질이 다 가라앉을 때까지 일정한 온도로 자신을 갈무리해야 한다 친절한 대민업무에 갇힌 그에게 마음껏 끓어오르거나 마음껏 울음보를 터뜨리는 것은 금물이다 하루를 접은 그가 어둑신한 골목 끝의 슈퍼마켓 플라스틱 탁자에 앉아 냉장고에 갇혀있던 맥주를 꺼낸다
냉장고에는 일정한 온도 이상 오르지 못하고 일정한 온도 이하로 내려가지 못하는 맥주병이 산다 가장 맛있는 온도로 제공 되려면, 꽁꽁 얼어서 터져버리고 싶은 마음도 활활 끓어올라 토해내고 싶은 마음도 다 소용이 없다 꼭 다물고 있던 맥주병의 꼭지를 따는 순간, 우주의 꼭지가 열리고 맥주의 속울음은 그제야 거품을 이루며 흘러내린다 터져버릴 수도 없고 끓어오를 수도 없었던 그의 가슴도 샤브샤브 녹아내린다 울음도 갇혀 있는 동안 달관을 배우면 황금빛이 되는 건지 거푸거푸 황금빛 맥주를 마시는 그도 더 짙은 황금빛 얼굴로 익어가고 있다
하루종일 영업 하느라 간 쓸개 다 빼놓았던 내 가슴도 '샤브샤브 녹아 내리'는 지,
나는 얼마나 더 달관을 배워야 '황금빛'이 되는 건지......
술맛이 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