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1

[스크랩] 천양희 / 낯설게 하기의 아름다움 제6강

보배59 2006. 8. 20. 22:10

 

낯설게 하기의 아름다움 제6강




어린애가 첫 세상을 보듯 시 앞에 앉을 때

어떤 신인이 나한테 시를 보여주는데 소쩍새가 겨울에 울고 있더라구요. 소쩍새는 초여름부터 웁니다. 그래서 내가 없는 것을 상상력으로 만드는 것은 정말 좋지만 실제로 있는 것을 왜곡시키는 것은 안 됩니다. 여름에 우는 소쩍새를 겨울에 운다고 하면 되겠습니까. 마음속에 생물을 넣고 다녀야 합니다. 살아있는 식물, 새소리 등 생물을 넣고 다녀야지 역동적인 시를 쓸 수 있습니다. 그리고 변화에 민감해야 합니다. 계절의 변화나 날씨의 변화에 민감해야 합니다. 비가 와도 그만, 달이 떠도 그만, 눈이 와도 그만 종소리를 들어도 아무 감흥이 없으면 생각이 죽어버립니다. 죽은 생각을 가지고 어떻게 살아있는 시를 쓸 수가 있겠습니까. 여러분도 연애를 하지 않아도 연애 감정을 좀 가져 보세요. 그리고 자기를 살려보세요. 그러면 시를 쓰는데 굉장히 도움이 됩니다.


낯설게 하기를 해야 합니다. 낯설게 하기라는 단어는 러시아의 형식주의자들이라고 일컫는 문학 이론가들이 있었는데 '시의 기능은 사물의 낯설게 하기'라고 쓴 데서부터 기인했다고 합니다. 낯설게 하기의 본보기의 시로는 김광균의 [추일서정]의 첫 구절에 '낙엽은 폴란드 망명정부의 지폐'라는 대목이 있는데 얼마나 새로운 인식입니까. 또 영국 작가 체스터튼은 가로수를 가리켜 '노상 누워 있던 땅의 일부가 지루함을 견디지 못해 벌떡 일어선 모습'이라고 했습니다. 얼마나 새로운 인식입니까. 관습적인 인식에서 완전히 벗어났지요. 이런 것을 여러분이 앞으로 좀 써야 합니다. 남의 시를 읽되 자기가 쓸 때에는 보지 마세요. 그러면 비슷비슷한 시를 쓰게 됩니다. 그때는 떠나 보내버리세요. 완전히 자물통을 채워놓고 아무 것도 없는 상태에서 쓰는 게 좋습니다. 다음은 동심적 발상을 해라. 왜냐하면 어린애가 처음 세상을 보았을 때 얼마나 놀랐겠습니까. 그리고 얼마나 신선합니까. 시인은 그런 발상을 해야 합니다. 맨날 나이만 먹다가 나는 늙었는데 하면서 왜 자기를 빨리 늙게 합니까. 주름살이 늘어서 늙는 게 아니고 영혼이 깜깜해질 때 늙는다고 했습니다. 나이가 많이 든 사람이라도 마음이 늘 살아있고 마음에 언제나 싹을 틔우고 꽃을 피우겠다는 사람은 얼굴이 훨씬 젊어 보입니다. 화장을 해서 젊게 보이는 게 아니고 마음을 색칠하라는 얘기입니다. 마지막으로 현실을 직시해라. 아무리 시를 잘 써도 자기 인생이 들어가 있지 않거나 존재의 그런 게 없거나 현실과 너무 분리된 시나 음풍영월조의 시는 가치가 없습니다.


이런 방법을 써도 시가 안될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는 우울하고 죽어야 되나 살아야 되나 하면서 새벽시장도 가보고 미친 듯이 다닙니다. 낯선 곳도 가보고 어디 가다가 노을을 보고 앉아서 펑펑 울어보기도 하고 나를 자꾸 닦달을 해야 됩니다. 고목도 바람이 흔들어주지 않으면 죽습니다. 저는 거실에 풍경을 달아 놓았습니다. 풍경 밑에 물고기가 달려 있는데 왜 물고기를 달았을까요. 물고기는 잘 때도 눈을 뜨고 잔답니다. 그래서 용맹정진하는 수도자처럼 물고기가 눈을 뜨고 자듯이 정신이 깨어 있으란 뜻으로 물고기를 달아 놓았다고 합니다. 우리 시인도 눈을 뜨고 자는 물고기처럼 정신이 깨어 있어야 합니다. 남이 잘 때 잘 것 다 자고 남이 먹는 것은 다 먹고 배가 불러서 정신은 어디로 가고 배부를 때 시가 됩니까. 하루에 두 끼만 먹어도 죽지 않습니다. 꼭 세 끼를 먹어야 합니까. 그 한 끼를 아껴서 불쌍한 사람을 도와주어야 합니다. 그래서 나는 시가 안될 때는 하루에 몇 번씩 풍경을 칩니다. 아마 옆집 사람은 스님이 와 계실지도 모른다고 생각할 겁니다. 나는 그럴 때 정신이 바싹 듭니다. 물고기한테 부끄럽습니다. 그 미물도 잘 때 눈을 뜨고 자고 스물 다섯 번을 허물벗기를 하고 공중으로 아주 멋있게 나르고 짝짓기를 한 다음 하루를 살다가 죽는답니다. 하루를 살다 죽는 그 미물도 성충이 되려고 천 일을 물 속에서 보내고 스물 다섯 번의 허물을 벗는데, 오관을 가진 인간이 허물도 하나 벗지 않고 고통도 받지 않고 고뇌도 하지 않으면서 어떻게 어려운 시를 쓸 수 있을까요.


그래서 나는 미물한테서 시인의 치열성을 배웁니다. 그 미물의 치열함이 나의 새로운 가치가 됩니다. 왜냐하면 그 치열한 깨우침이 나로 하여금 시를 쓰게 만들면서 그 시가 정신의 밥이 되거든요. 그리고 나를 잘 살게 하기 때문입니다. 잘 산다는 거는 시로 된 정신의 밥을 먹으면서 살아야 잘 사는 겁니다. 마지막으로 함민복 씨의 시 [긍정적인 밥]으로 제 강의의 결론을 대신하겠습니다. ◈


시 한 편에 삼만원이면
너무 박하다 싶다가도
쌀이 두 말인데 생각하면
금방 마음이 따뜻한 밥이 되네
시집 한 권에 삼천원이면
든 공에 비해 헐하다 싶다가도
국밥이 한 그릇인데
내 시집이 국밥 한 그릇만큼
사람들 가슴을 따뜻하게
덮여줄 수 있을까 생각하면
아직 멀기만 하네


강사 천양희

출처 : 천양희 / 낯설게 하기의 아름다움 제6강
글쓴이 : 금강하구사람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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