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1

[스크랩] 박제천 / 나는 시를 이렇게 쓴다

보배59 2006. 8. 20. 22:13

나는 시를 이렇게 쓴다



박제천



[나는 시를 이렇게 쓴다]와 같은 명제는 시인된 자에게는 언제나 주어지는 시험지라 할 수 있다. 물론 명제에 따라 그때그때 작성한 답안지가 시작품이지만, 답안지를 제출하는 즉시 시험지가 또다시 부여되는 상황이니, 답안지를 작성하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스스로에게 물어보고, 보고 듣고 겪고 느끼고 생각하는 모든 것을 정리해야만 한다. 말하자면 시를 통해 자화상을 그려내는 이 작업에서는 언제나 코가 조금은 비뚤어지고, 눈의 윤곽이 흐려지게 마련이다. 가까스로 완성한 자화상의 얼굴 역시 제 얼굴로 보이지 않기 일쑤이다. 시의 속성이 바로 시인의 속성이니, 완성되고, 정지된 것이 아니라 끊임없는 자기갱신에 의해 달라지는 것이 본질이기 때문이다. 엘리엇이 시에 대한 정의의 역사란 오류의 역사란 말로 마무리한 연유도 여기에 있다. 정답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시인된 각자가 평생에 걸쳐 작성해내야 하는 답변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시란 마치 90퍼센트는 바다 속에 몸을 감춘 거대한 빙하와 같다. 그 속내의 90퍼센트조차 짐작하지 못할 뿐더러 그나마 보여지는 10퍼센트조차 제대로의 모습을 보여준다기보다는 수시로 변화하는 한순간을 보여주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이렇듯 시에 대한 접근은 어느 쪽에서 부딪쳐 들어가도 그 전모를 보여주지 않는다.

나는 한 40년 시와 함께 살아왔다.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시의 길에 들어선 이래 나는 우선 좋은 시를 쓰고자 발버둥치는 일에 전력을 다해 매달렸고, 그 다음에는 자연스럽게 생업과 맞물려 좋은 시를 가려내고 펴내는 일에 종사하게 되었다. 그 결과 펴낸 개인시집이 10권을 웃돌게 되었고, 문학아카데미를 운영하면서 엮어낸 시집만도 160종이 넘어가고 있다. 사정이 이러하지만, 시가 무엇이냐는 질문에 대해 나 역시 할 수 있는 최선의 대답은 그동안 내가 써놓은 시작품과 앞으로 내가 써나갈 작품들을 합한 것이라는 답변이 나올 뿐이다.


시를 쓴다는 일은 영혼의 전신포복이라 할 수 있다. 어둠 속에서 한줄기 빛을 찾아 오체투지한 채 한뼘 한뼘 배밀이를 해나가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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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사는 이 세계가 시인의 싱징물이라면 그 모든 존재가 서로 얽혀 있는 은유의 그물망을 이룰 수밖에 없으므로 그 낱낱의 상징과 그물망을 점검하는 일이야말로 시인의 몫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시인이 불과 2,30편의 서정적인 단상으로 그가 살고 있는 이 세계를 직절적으로 파악하고 묘사할 수 있는 가능성까지 부인하지는 않겠지만, 나는 동시에 그 세계의 편협성을 지적하고 싶은 것이다.


어찌하여 나는 사람이며 저것들은 돌인가, 우주의 이 일점 별에 함께 존재하고 있는가. 누구도 내 궁금증을 풀어줄 길은 없을 것이다. 이것이라고 생각하면 저것이 새로이 나타나고, 이 모습을 가질 때에는 저 모습이 또 출현하는 이 무차별의 정신계는 어쩌면 처음부터 미로로 짜여진 한 세계였는지도 모른다. 그때문에 장주(莊周)도 혼돈을 이 세계의 거푸집으로 내세웠던 것이리라.


내 안에서 나를 영매 삼아 끊임없이 쏟아져 나오는 이것들을 여지껏 시라고 불렀지마는, 나는 그 거품의 시 속에 숨겨진 단 하나의 시를 만나고 싶다. 맥주의 거품이 그러하듯 시의 향과 맛은 실상 이 거품에 담겨져 있는 것이라 알고 있는 나를 지나서, 아직도 발효되지 않은, 덩어리째로 내 안에 숨어 있는 것들을 만나고 싶은 것이다.


시에 대한 내 생각은 이렇다 하더라도 막상 창작의 과정을 체계화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매 작품이 내용에 따라 그에 걸맞는 형식을 창출하는 단계에 들어서면, 그 내용이 우선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독자를 위해서는 시창작을 희망하는 새내기들을 위해 출간하였던 책들을 소개하는 것이 보다 효과적이라 생각된다. 최근 10여년에 걸쳐 나는 새내기들의 시쓰기를 거들어온 것에 큰 보람을 느끼고 있다. 나와 공부한 새내기 시인이 백여 명을 넘어섰을 뿐더러 시간이 갈수록 그네들이 더욱 좋은 시를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시창작지도의 경험을 바탕으로 엮어낸 책이 강우식 시인과 공저한 [시를 어떻게 쓸 것인가]를 비롯하여 [시를 어떻게 고칠 것인가] [시를 어떻게 완성할 것인가]의 시창작 실기 시리즈 3권이다. 창작을 위해 개발한 일종의 소프트웨어를 기술한 것이다. 이 방식은 실제의 창작교실에서 새내기들의 작품 방향을 제시하고, 창작 여건을 효과적으로 조성하는 한편, 실제 창작에 필요한 표현의 구조를 습득시키는 것이다.

요점만 발췌한다면, 나는 시를 공부하려는 새내기 동무들에게 우선 [무엇을 어떻게 쓰느냐]는 명제 중에서 [어떻게]를 먼저 선택하라고 권한다. 두 가지 명제를 해결하기보다는 기초적인 문제부터 풀어나가라는 것이다. 시 쓰기는 머리 싸매고 고민하는 일이 아니라 스스로의 갈등이나 절망을 화해로 풀어내고 씻어내는 한판 굿거리처럼 신명나는 일이므로, 이처럼 신명나게 시를 쓰려면 [어떻게]에 관한 규칙을 정해 놓아야 한다고 일러준다. 모든 스포츠에 룰이 있듯이, 모든 예술에 형식이 있듯이 그 규칙과 형식을 먼저 익혀야만 주어진 무대, 펼쳐진 마당 안에서 한판 영혼의 축제를 신명나게 행할 수 있다는 것을 강조한다.

규칙의 제1조는 창작 시간이다. 한편의 시를 쓰는 데 필요한 시간은 누구도 정할 수 없겠지만, 나는 내 경험상 30분 정도로 짧게 잡아 단시간에 집중의 효과를 거두어야 한다고 말한다. 내 말을 처음 듣는 새내기들은 대개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생각한다. 규칙의 제2조는 [제1조가 손에 익을 때까지 한번 쓴 작품을 수정하지 말라]고 한다. 이 역시 새내기들은 [말도 안 되는 소리]라며 불평에 가득 찬다. 규칙의 제3조는 [한편의 시를 15행, 4단 구조로 전개하라]. 규칙의 제4조는 [하고 싶은 말을 쓰지 말라]. 규칙의 제5조는 [운명이니 사랑이니 가족이니 사회니 남의 이야기와 같은 것들을 쓰지 말라] 규칙의 제6조는 [자신의 상처나 부끄러움이나 죄를 고백하라]. 이렇게 내가 정해 알려주면서 끝없이 요구하는 규칙의 대부분에 대해 새내기들은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입을 모은다. [이게 무슨 예술창작인가] [자유시를 쓰는 데 무슨 규칙이 있는가] [쓰고 싶은 말도 안 되고, 이 말도 안 되고 저 말도 안 되면 도대체 무슨 말을 쓸 수 있단 말인가] 그들이 한번도 생각해보지 못한 도식적인, 어찌 생각하면 그네들이 생각하고 있는 예술을 모독하는 소리만 골라 말한다고 역정에 가득 찬다.

마침내 불평꾼들이 문을 박차고 나가면, 나머지 새내기들은 두 그룹으로 나뉜다. 한 그룹은 반신반의하면서 [한번 해보자] 하고, 또 한 그룹은 [하라는 대로 하자]며 트레이닝에 들어간다. 그리고 한두 해가 지나면 [하라는 대로] 그룹이 먼저 형식을 손에 익히고, [한번…] 그룹도 뒤이어 하나 둘 형식에 익어가기 시작한다. 이 무렵부터 내가 그네들에게 요구하는 것은 [무엇]에 관한 문제이다. 이미 형식을 익혔으니 그 형식을 버리고 내용에 걸맞는 새 형식을 창출하는 예술 원론에 몸을 맡기라는 것이다. 따라서 전과 달리 한번 써놓은 작품도 꼼꼼이 퇴고를 하고, 좋은 모티프가 잡히면 시인의 내부에서 숙성이 되도록 기다리는 법도 익혀야 한다.

여기서부터는 시에 관한 자신의 생각도 정리를 해야 한다. 잎에서 말한 엘리엇의 지적대로 시에 대한 스스로의 정의를 마련해야 한다. 그것은 단시간의 일이 아니라 평생에 걸쳐 작성해야 하는 답안지이며, 그 답안지는 한편 한편의 시로 구체화되는 것이다. 시를 써내는 데 만족하는 것이 아니라, 시간이 갈수록, 작품이 축적될수록 그 내용이 상승하는 방법론, 그리하여 한 시인이 스스로 정한 빛의 방향으로 한뼘한뼘 영혼의 전신포복을 해나가는 일이 시라고 생각하는 나로서는 나와 공부하던 새내기들이 [어떻게 쓰느냐]는 명제에서 벗어나 [무엇을 쓰느냐]에 헌신하는 과정을 지켜보는 것만도 내게 주어진 무상의 은총이라 생각하는 것이다.


출처 : 박제천 / 나는 시를 이렇게 쓴다
글쓴이 : 금강하구사람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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