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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리창의 송충이

보배59 2006. 5. 12. 22:47

              

        유리창의 송충이

 

 

                                 -김기택-

 

 

 

 

   유리창에 송충이 한 마리 붙어 있다

   아파트 10층 창문까지 어떻게 올라왔을까

   송충이가 기어 온 긴 높이를 생각해 본다

   오를수록 더 높아지는 높이

   아무리 힘차게 꾸물거리며 기어도

   벽 창문 벽 창문 벽 창문 벽 창문 벽 창문......

   온몸이 허리로 된 송충이는 그래도

   부지런히 뒤 허리로 앞 허리를 밀어 올린다

   허리 밑 다닥다닥 점 같은 다리들이

   유리창에 아슬아슬하게 붙어 있다

   흰 갈대잎 같은 털들이 바람에 휘날린다

   몸도 털이 휘어지는 방향으로 기우뚱거린다

   습관의 힘이 아니었다면

   송충이는 벌써 10층 아래로 떨어졌을 것이다

   떨어져도 부러질 것은 없지만

   그래도 떨어지지 않으려고 안간힘이다

   그러다 갑자기 허리걸음을 멈추고

   송충이는 허리로 된 머리를 높이 들어

   여기저기 허공을 한참 더듬는다

   이 나무는 가도가도 거대한 평면 사각뿐이다

   이파리 하나도 없이 어떻게 광합성 하나

   아무래도 길이 없는 것 같지만

   그래도 잇는 힘을 다해 허리를 늘였다가

   깊은 주름이 생기도록 줄이면서

   송충이는 11층을 향해 기어오르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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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택의 시선은 사물의 세부를 더듬는 탐정을 닮았다. 그는 일상의 한 장면을 유심히 들여다보고 그것을 건조하기 이를 데 없는 목소리로 보고한다. 아파트 유리창에 붙은 송충이의 짐짓 무용해 보이는 동작을 화자의 시선은 놓치지 않고 포착한다. 까마득히 높은 유리창을 기어오르는 송충이의 <안간힘>은 일상에 매달려 사는 화자의 삶의 힘겨움을 반영하고 있다. 화자는 어쩌면 송충이가 자신이 오르고 있는 아파트를 이파리 하나 없는 나무로 착각한 것이 아닐까 생각해 보기도 한다.

그런 의미에서 현대 도시의 소시민은 <광합성>이 불가능한 나무에 매달려 사는 송충이와 다르지 않다.

 

                                         해설 -남진우-

 

                            2001.현장비평가가 뽑은 올해의 좋은 시.현대문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