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1
나를 스프게 하는 시들
보배59
2006. 9. 1. 2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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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묽고 싱거운 뉘우침 세상을 보는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80년대 시인들이 망원경으로 세상을 보았다면,90년대 시인들은, 현미경으로 본다는 사실을 일단 인정한다고 하자. 그러나 모든 것을 현미경으로만 보려고 하는 90년대식 세상 읽기 방식이 나를 슬프게 한다. 거기서 싹트는 새로운 상투성이 나를 슬프게 한다. 망원경과 현미경을 번갈아 가며 보자. 때로는 그 따위 것들 없이, 있는 그대로 세상을 보자. 광장이 지겹다고 골방에만 틀여박혀 있어서야 쓰겠는가. 시로써 말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나를 슬프게 한다. 그런데 시로써 말할 수 있는 게 많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나를 더욱 슬프게 한다. 처음부터 끝까지 묘사 한 줄 없이 자기 뱃속에 든 것을 줄줄이 쏟아 놓기만 하는 시는 나를 슬프게 한다. 얼마나 하고 싶었으면 시라는 형식을 빌어 일방적인 고백을 할까 싶기도 하지만, 시의 옷을 입고 이리저리 시달리는 그 언어는 또 얼마나 몸이 아플 것인가. 말을 하고 싶어도 참을 줄 알고, 노래를 시켜도 한 번쯤은 뒤로 뺄 줄 아는 자가 시인일진대, 어두운 노래방에서 혼자만 마이크를 잡고 있는 시인은, 나를 슬프게 한다. ...... ...... 술을 먹지도 않고 술에 취한 것처럼 보이는 시가 있다. 아침에 한 말을 저녁에 또 하고, 3년 전에 한 말을 5년 후에 또 되풀이하는 시는, 나를 슬프게 한다. ..... .... 밤톨만한 돌멩이에다가 설탕물을 바른 시도 나를 슬프게 한다. ...... ...... 시에서 구체성은 감동의 원천이고,삶의 생생한 근거이다. 구체성의 습지에 몸을 비벼댄 흔적이 없는 시는 나를 슬프게 한다. ...... ...... 나를 슬프게 하는 시들을 앞으로도 내가 더 읽어야 할지,말아야 할지 생각하는 일은 나를 슬프게 한다. ****************************************************** __ 안도현__ (시 창작 강의 노트)에서 . | ||||||||||||||||||